서기 2000년이다. 새 천년이 시작됐다. 내 나이 마흔 다섯이다. 나는 그간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 40대 중반이다. 바야흐로 내 인생은 가을이다. 봄날에는 무엇을 심었고 여름날에는 어떻게 땀 흘려 가꿨는지 점검해보자.

내 나이 열다섯 무렵은 절정의 봄날이었다. “나는 도대체 왜 사는가?” 난 왜 태어났고 뭐하며 살고 있으며 왜 살아가고 있는가? 1970년대는 나에게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그 당시에 한줄기 바람처럼 잠깐 스쳐갔던 의문이다. 그때로부터 30년 흘렀다. 답은 얻었는가? 탈곡해야할 가을이다. 아직도 씨앗과 씨름하고 있는 나를 본다. 

발아되지 않은 고귀한 씨앗이 마음의 심연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린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정상에서 만납시다.” 란 제목의 책을 친구들과 나눠읽었다. 먼 훗날 정상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 때로부터 먼 훗날이된 작금의 내 삶은 정상의 삶인가? 딱잘라 아니다라고 본다. 반면에 비슷한 상황에서 출발했던 몇 친구는 나름대로 정상에 올랐다며 우쭐대는 삶들을 살고 있다.

그들과 비교하면 택시 운전수는 결코 정상의 삶이 아니다. 세상의 잣대를 내 마음대로 농락하지는 말자. 세상의 잣대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수, 목사, 변호사, 사업가, 고급공무원된 친구들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흘린 피와 땀의 노고가 얼마일지 나는 도무지 짐작도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개인택시 운전수가 정상이라도 되는듯이 떠벌리는 짓 따위는 이제 집어 치우자

 “택시운전수노릇도 감사하며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주제가 뭘 하겠다고 하는가?” 마흔 세 살 어느봄날 산속에서 죽어 가다가 얼결에 들었던  호통소리다.

그 순간에 감사의 씨앗하나가 내 삶속에 심어졌다. “나는 왜 사는가?” 의 정답이 내 삶의 현실을 무조건 감사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골똘히 했었다. 내면에서 씨앗이 발아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어디선가 웅웅거리며 소리가 들리고 천지가 환희로 가득하며 꽃 향기가 풀풀 풍기는 그런 환상도 경험했다.

아하! 이제야 씨앗이 발아되고 있구나 싶었다. 나는 그때부터 즉시 쓸데없는 사색을 멈췄다. 매일아침 약수터 다녀오고 틈틈이 내 생각들을 독수리 타법으로 컴퓨터에 끼적거리기 시작했다. 시간 나는대로 등산도 했다. 벌써 2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월 참  빠르다.

기어서 내려왔던 뒷산은 물론 더 높은 산들도 가볍게 오르내린다. 손 글씨 보다 빠르게 컴퓨터 자판도 두드린다. 끼적거린 보람이 있어서 제법 말이 되는 글도 쓰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왜 사는지의 정답은 잘 모르겠다. 알려고 공부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모르겠다. 이쯤에서 이 문제를 더는 넘보지 말기로 하자. 그리고 이쯤에서 내 인생 전반전을 끝내기로 과감하게 결정하자.

가을이니까 추수를 해야 한다거나 이 직업이야말로 최고로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세상이 저들 맘대로 정해놓은 잣대에 입방아에 더는 휘둘리지 말자. 세상에서 알량한 감투하나 써보고서 내가 왜 사는지 아는 줄 알았던 어리석었던 추억도 과감히 떨쳐 버리자.

감사함의 새 삶을 이제 2년 살았다. 최근 2년과 파란만장한 과거의 43년을 바꾸라면 난 단연코 거절할 터이다.

                                                                                                 오! 할렐루야!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