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다가온다. 일정한 거리에 이르면 그 곳에서 딱 멈춘다. 더 다가왔으면 하고 기대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본다. 아뿔싸! 나를 둘러싼 투명한 보호막이 있구나 싶다. 자세히 살펴보면 나 뿐 아니라 강하고 약한 차이는 있어도 너나없이 투명한 보호막이 있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장벽이 있다. 솔직한 사람들은 장벽에 가시철망을 쳐놔서 가까이 다가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보이므로 오히려 다가가기가 쉬울 수 있다. 철망이나 벽돌을 하나씩 걷어내며 다가가면 되는 까닭이다. 투명한 장벽은 도무지 방법이 없다.

세상에서 잘난 사람일수록 그 투명한 유리벽은 방탄유리라 접근이 불가하다. 그것도 부족해서 더 잘난 사람들은 측근들이 나서서 그 둘레에 알아서 가시철망으로 울타리까지 이중 삼중 덫 쳐 놓는다. 그걸 치워도 울타리 너머의 방탄 유리벽이 있어 어차피 접근은 불가한데도 그런다.

잘난 사람들은 늘 장벽이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잘난 사람으로 인정받기 전에는 모를까 인정받고 나면 뚫을까 겁나서 되도록 더 단단한 강판 유리로 벽을 만든다. 그것이 잘난 사람들의 전매특허다. 잘날수록 뭔가 혜택받을 것이 없나 싶어서 귀찮게 달라붙으려는 인간들이 많으니 어느정도 이해가는 측면도 있기는 하다.

나도 어설프나마 투명유리로 벽을 만들었다. 하지만 웃기는 것은 유리에다 나 스스로 덕지덕지 색칠을 해서 누구라도 금방 알아본다. 그러므로 접근이 용이하다. 그래도 나름 투명유리 흉내를 내고 있으므로 너무 가깝게 접근하면 위험하다. 때로는 이것 좀 치워 하고 주먹이라도 날리면 쉽게 깨지는 유리다.

 때로는 유리 파편이 튀어서 서로가 상처를 입기도 한다. 방탄유리는 상처를 받지는 않는다. 잘난 사람들의 특권이다. 유리벽에 무작정 돌진하다가 방탄유리에 부딪쳐 상처받는 가련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유리벽의 실체를 모르고 접근하다가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받았던 아픈 추억이 내게있다. 오래도록 치유를 해야만 했다.

지금은 자존감이라는 치료약을 상비하고 있어서 어지간한 상처에는 끄떡없다. 그래도 역시 투명유리로 단단히 무장한 인간들에게 접근하는 짓은 가급적 삼가야할 일이다. 자존감으로도 치유하기 어려울 만큼의 깊은 상처를 입으면 죽을 때까지 치유가 안 될지도 모르는 까닭이다.

예컨대 사실이야기인지는 모르나 아무튼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그 이발사가 입었던 그런 상처는 치유가 불가할지도 모를 일이다. 가끔은 잘난 것들끼리도 서로 부딪치며 누구의 방탄유리가 강한지 싸우다가 와장창 깨질 때도 있다. 그걸 보는 재미는 그 어떤 영화보다 쏠쏠하다.

나를 고찰해본다. 나는 사실 고의적으로 벽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런 줄 알았다. 곰곰이 생각하니 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차라리 보이는 가시철망이 더 낫다. 나는 줄곧 벽을 허물고 솔직하게 툭 터놓고 서로 교통하며 살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 나부터 늘 벽을 허물려고 했다.

하지만 허물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나날이 더 단단한 유리벽을 만들었다. 이웃의 눈에 띌까싶어 부지런히 유리를 닦아 투명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사람 좋은 미소로 포장도 했다. 누군가 접근해오면 전전긍긍했다. 대개는 일정한 거리에서 딱 멈춘다. 투명유리벽에 혼쭐난 사람들이 대부분인 까닭이다. 나는 휴! 하고 한숨을 내 뱉는다.

난 우물 안 개구리다. 내가 사는 우물 안에는 나와 사정이 비슷한 개구리들이 우굴 거린다. 굳이 유리벽을 치우고 세상 밖으로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홀연히 유리벽을 통과해서 내게 다가온 주님에게 혼쭐이 나고서야 우물 안 개구리인 내가 가련한 줄 깨달았다.

인간의 탈을 쓰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며 하소연하지만 주님은 오늘도 너 빨리 저거 깨버리라고 재촉하신다. 지극히 작고 보잘 것 없는 나라는 것을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그러므로 내게는 눈으로 보이는 튼튼한 벽이 있거늘 굳이 투명유리벽까지 뭐가 필요할까 싶기는 하다.

그렇다. 내게는 분명하게 보이는 장벽이 있다. 그것을 투명한 장벽으로 바꾸려고 한들 바뀌지 않는다. 차라리 솔직하게 인정하고 걸림돌을 조심스럽게 치워나가는 편이 훨씬 현명하지 싶다. 덕지덕지 때 묻은 유리벽은 아예 치워버리자 누구라도 가까이 다가올 수 있도록.. 오!! 할렐루야!!

광개토 대왕이 만든 유리벽속에 갇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