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에서 약국할 때 만났던 장애자 한 분이 계셨다.

약국에 사무용품을 팔러 오셨는데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순수하게 믿던 나는 그 분의 기구한 사연을 들어 드리기도 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중학교 때까지  우등생이었는데 뇌성마비에 걸려 육신의 장애를 입어 수족이 불편하셨다.

온가족이 매달려 낫게 하고자 했지만 많은 가산만 탕신하게 되고 절망하여 수 없이 자살을 시도했었다고 한다.

어느덧 청년이 되자 주위에서 외모는  말쑥하지만 지능은 떨어진  아가씨를 소개해 주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

따뜻한 심성의 그 분은 부인을 아끼며 사랑했고 아기까지 잉태하여 태어날  생명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고 한다.

머리는 자기를 닮고 외모는 엄마를 닮은 온전한 아이가 태어나리라고...

그런데 아이는 자라면서 엄마와 같은 지능을 가진,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장애자의 모습을 보였다.

가장으로서 식구를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만큼 책임과 성실로서 가족을 부양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온가족이 병약하여 늘 약을 달고 살아야 했기에  약을 무상으로 드리는 것과 약간의 생활비를 보조해 드렸다.

가끔은 귀찮을 때도 있었는데 꿈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질책하셨다.

꿈에서는 그 아저씨가 약국안에 계시면서 문을 열고 밖에 서 있는 나에게 먹을 것을 주던 것이었다.

꿈을 깬 후 그분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도록 나를 먹여 살리시는 장본인이고, 하늘에서는 그 분이 보석처럼 빛나는 귀하신 분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궁핍한 가운데 계신 그 아저씨는 우리가 다니던 교회에 오셔서 후원도 받게 되셨다.

그러다가 우리 가정이 중국 선교를 위해 파송이 되자 그 분은 여러차례 몇십만원의 헌금을 선뜻 내놓으셨다.

생색내는 정도로만 그치던 나의 무성의함을 얼마나 풍성하게 되갚아 주시던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오늘도 그런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생활 보호 대상자로 혜택을 입지 못하는 70대 후반의 할머니가 계신다.

아들이 사업에 실패하여 도저히 부양할 형편이 되지 않아 할머니는 스스로 구부정한 허리로 폐지를 주워모아 월세, 공과금, 식비등 생활비를 충당하셔야 한다.

핍절한 가운데도  늘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다며 눈물이 글썽거리시는 그 분은 새벽 4시에 일어나 4시간동안 중보기도를 하시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시기도 하다.

한달에 한 번 정도 처방전을 받아 오셔서 얼마 되지 않은 약값은 받지 않았고 간혹 영양제 한 통씩 건네는 정도로  나의 의무(?)를 다 했다.

그 분은 명절이 되면 꼭 찾아 오신다.

이번에도 몇만원 상당의 딸기와 생선을 사 오셔서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신다. 

나의 뻔뻔함과 계산에 밝은 속내를 알기에 정말 부끄럽고 죄송했다.

별로  고마워 하실 것도 없는데 자신들에게는  과부의 두 렙돈 같은 큰 돈을 아낌없이 던지신다.

그 분들의 순수하고도 풍성한 마음 씀씀이가 놀랍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런 것 아닐까?

내가 한 게 정말 없는데 그 분은 다함이 없는 풍성함으로 채워 주신다.

고전1;30 말씀처럼  주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고 한다.

단지 믿기만 했을 뿐인데... 그 믿음조차도 선물로서 주어진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내가 어리석어 그 거져 주신 풍성한 은혜를 깨닫지 못하기에 그 연약한 분들을 통해 가르쳐주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