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KBS 드라마 “열아홉 순정‘에 주인공으로 연변아가씨 국화가 나와서 연변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연변 말이라기보다는 북한 말투에 가까운 것 같았다. 내가 처음 연길에 왔을 때 연길에 있는 조선족들과 대화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분명히 서로가 조선말을 하고 있는데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업시간에도 한국말로 강의를 하면 그때는 알아듣는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학생들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걱정한 적도 있었다.

  연변지역에는 재미있는 방언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남편을 ‘나그네’라고 부른다. 처음에 이곳 조선족 아주머니들이 ‘나그네가 어떻다.’고 할 때 이곳 사람들은 참 시적인 표현을 쓰구나 하면서 그 집에 손님이 왔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주 ‘나그네’라고 해서 그 집에 손님이 염치없이(?) 오래 머무르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나그네가 남편인  것을 알고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남편을 ‘나그네’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곳 만주지역은 항일 독립운동을 하던 지역이고 6.25사변(중국에서는 ‘항미원조해방전쟁’이라고 함) 때는 많은 조선족 남성들이 전쟁에 참전하여 돌아오거나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남편이라고 하지만 가정을 이루어 오손 도손 같이 살지 못하고 돌아다니다가 일본군 눈을 피해서나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해서 어느 날 저녁에 잠깐 집에 들어왔다가 다음 날 이른 새벽에 떠나는, 마치 나그네와 같은 사람이기에 남편을 나그네라고 한 것이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물론 순 나의 억측일 뿐이다.

  그리고 말이 안 되는 엉뚱한 말을 하면 “왕청같은 말을 한다.”고 한다. 왕청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한 현(한국의 ‘군’정도의 행정단위)인데 산이 많아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곳이다. 이곳 사람들에게 왜 하필 ‘왕정’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이곳 사람들도 명확히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 낙후된 지역을 비유해서 하는 말인 것 같다. 한국말에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표현과 비슷한 비유인 것 같다. 삼천포 사람들이 이 말을 좋아하지 않아서 삼천포시 이름을 바꿨다고 하던데 왕청 사람들도 ‘왕청 같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호칭에서도 할머니를 ‘아매’, 할아버지를 ‘아바이’, 아버지보다 연세 드신 어른을 ‘마다바이’(큰아버지란 의미), 어머니보다 연세 드신 어른을 ’마다매‘(큰엄마란 의미)‘ 그리고 젊은 새색시를 ’아재‘라고 부른다.   

  방언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표현도 있다. 한국 사람들은 ‘피나는 노력’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피타는 노력’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나게 놀자’라는 말을 ‘썩어지게 놀자’고 한다. ‘썩어진다’는 단어와 ‘놀자’라는 단어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같이 붙여놓으니까 참 재미있는 뉘앙스가 풍긴다. 얼마나 놀아야 썩어질까? 어떤 경우에 ‘심하게 야단맞았다‘는 말을 ‘oo에게 썩어지게 혼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곳 조선족들은 중국에서 한족들과 섞여서 살다보니 중국어 발음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출근하다’를 ‘상발한다’고 하는데 중국어 ‘상반(上班)’에서 온 말이고 ‘퇴근하다’는 ‘샤발한다’고 하는데 중국어 ‘샤반(下班)’에서 온 말이다. 그리고 경비(지키는 사람)를 ‘직발’이라고 하는데 중국어 ‘즈발(直班)’을 조선어 한자 발음대로 한 말이다.

  한중수교 이후 이곳 조선족들이 많이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 사람들도 사업으로나 관광 목적으로 이곳을 많이 방문하면서 언어의 교류도 많아지는 추세이다. 그리고 연변 TV나 라디오 조선말 방송의 아나운서들도 KBS에서 연수를 받고 와서 한국말로 방송한다. 물론 연변 말투가 남아있지만... 또한 이곳 조선족들이 한국말(특히 서울 말씨)이 참 부드럽고 듣기 좋다고 하면서 한국말을 가르쳐달라고까지 한다. 그러다보니 연변의 역사와 문화가 스며있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구수한 향토 내음 나는 연변 말씨가 점점 약화되고 부드럽지만 깍쟁이 같은 서울 말씨가 점차 들어나는 경향이 있다. 연변 말이 약화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나 혼자만이라도 연변 말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연변 말을 썩어지게 사랑하겠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