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중순에 생일 파티를 했다. 내 생일은 설 전날이다. 우스개 말로 까치설이 내 생일이라고 농을 하며 살아온 세월이 어언 60년이다. 먹을거리가 열악하던 까마득한 철부지 시절에 난 내 생일 날이 엄청 좋았다. 설날 먹으려고 준비하는 맛있는 것들을 내 맘대로 먹어도 됐으니까

하지만 철들며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서는 서러웠다. 나만의 특별한 행사가 아닌 것을 알게 된 까닭이다. 세월이 더 흐른 후에 난 나만을 위한 특별행사를 기대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완전히 포기해 버렸다. 그랬더니 홀가분했다. 심연의 저 깊은 곳에는 그러나 늘 은근한 서운함이 있었다.

수년 전부터 아내가 설 전날이 아닌 그 며칠 전에 자식들과 의논해서 적당한 날을 잡아서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다. 아하!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싶어 감동했다. 결혼하고서도 내 생일 따위에는 전혀 관심 없었던 그녀였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변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감동 제대로 받았는데 그 날을 시작으로 나도 매년 제대로 된 생일파티를 갖기 시작했다. 올해는 특별히 큰 촛불 여섯 개 꽂아놓았던 케이크를 잘랐다. 어느덧 인생의 한 살이 마지막 생일파티였다. 코끝이 시큰했다. 그날 자식들도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 내게 주었다.

올 봄에 결혼한 아들과 며느리가 책처럼 앨범을 만들어서 건네 준 것이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라는 제목으로 가족들 특별 행사가 있을 때 마다 사진을 찍어서 보관해 둔 것 중에서 지들 나름대로 적당하다 싶은 것을 선별해 작은 책자로 엮은 것이었다.

학창시절에 졸업앨범을 받듯 내 인생의 졸업앨범인가 하는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쳤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포장을 뜯고 한 장씩 넘기며 감상하다보니 가슴속에서 감동의 물결이 잔잔히 일렁인다. 주로 여행 하면서 찍었던 사진들이다. 매 순간마다 그날의 아름다웠던 추억의 순간들이 새롭다.

성경을 읽다보면 출애굽기에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매일 만나를 일용할 양식으로 공급해 주어 살게 하셨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그 성스러운 식물 만나 한 오멜을 항아리에 채워서 대대후손을 위해 간수하라고 하셨다. 내가 받은 앨범은 항아리 속에 간직한 내 인생의 만나가 아닐까 싶다.

내 삶을 돌아보면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을 터이다. 오죽하면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삶이란 제각각 각자가 저만의 전쟁을 치르는 것이라고 했을까 싶다. 겉으로 보기에 행복해 보여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누구나 삶은 힘들다. 나만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네 이웃의 어려움을 올곧게 헤아리라는 뜻일 게다. 내 삶의 전반기를 돌아보면 나 하나의 생존을 위한 전쟁 치르기에도 버거웠다. 감히 다른 사람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인생의 한 살이를 살고 난 60년 인생이 부끄럽다.

앨범을 보면서 그 많은 축복의 순간들이야 말로 매일 만나를 내려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싶었다.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내게 만나를 내려 주셔서 지금껏 살게 하셨다. 호시절에 한 세상을 살아온 축복받은 인생이다. 내년에 회갑이다. 다시 새 인생이 시작된다.

한 살이를 살아온 경험으로 미뤄 보건대 하나님께서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만나를 공급해 주시리라 믿어진다. 이런 믿음이 내게 주어진 삶이 경이롭다. 한편 부끄럽다.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인생인데 아직도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까닭이다.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로 판시판 산 완등하고 기념 메달과 확인증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