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가끔 염장 지르는 그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행복합니다. 그녀가 영혼 없이 던지는 말 한마디가 무미건조한 삶에 가끔 활력소가 되는 까닭입니다. 그녀의 말에 찌르르 전류가 흐르며 화나던 이유를 생각하노라면 희한하게도 감사하는 쪽으로 결말이 나곤합니다.

2015년 8월 28일은 내가 선교제일교회에서 새벽예배 드린 날 수가 딱 777번째 날이었습니다. 7이란 숫자가 내게 아무이유 없이 기분 좋게 할 때가 종종 있어서 그랬을까요? 예배드리고 예배당 밖에 나오며 바라본 하늘은 유난히 높고 푸르렀고 여름을 몰아내는 바람결은 더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흥에 겨워서 혼잣말처럼 말했습니다. ‘이런 날엔 등산하기 딱 좋은데’ 라고 그러자 동행하던 그녀가 ‘데’라는 말도 채 끝나기 전에 ‘그럼 등산 가~’ 라고 합니다. 휴무일이었다면 그 말이 고마운 말로 들렸을 터이나 잠시 후 일나가야하는 상황인지라 ‘욱’하며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옵니다.

그녀가 나에게 염장을 질렀기 때문입니다. 뻔히 그럴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염장 지르는 처사가 분명합니다. 그까짓 돈 포기하고 정말로 일 나가지 말고 확 그렇게 해서 나도 똑 같이 그녀의 염장을 질러볼까 생각하다가 피시식 웃고 말았습니다.

내 인생 전반기에는 조금만 여유가 있다싶으면 게으른 습성이 스멀스멀 올라와 인생을 즐긴다며 툭하면 일하지 않고 농땡이치곤 했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있으니 사나이 팔자 이만하면 족하지 아니한가? 어쩌고 하면서 들로 산으로 놀러 다녔던 나를 그녀는 지금 힐난하고 있는 겁니다.

잠깐의 유혹을 물리치고 내게 주어진 일용할 양식을 얻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주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 중에서 제 1순위라며 어지간한 행사는 뒤로 미루고 사는 작금의 나를 시험하고 있구나 싶어 더 화가 났었나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지 못하면 화나기 마련입니다.

그녀는 아마도 ‘나도 일 안하고 놀고 싶은데’ 라고 말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무능한 남편 만나서 호의호식 한번 제대로 못하고 살면서 직장까지 다녀야하는 고달픈 그녀입니다. 푸념어린 염장지름 정도는 아름다운 애교입니다. 급상승하는 행복의 온도계가 보입니다. 할렐루야.

얼굴을 돌려버린 그녀 ...